< 엄길청 칼럼 > 가벼운 세상의 대가인가

심귀영 기자 | news@thesegye.com | 입력 2020-03-30 11: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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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항에 나가보면 등산복 차림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젊은 가족들은 주말이면 SUV 차를 몰고 야외로 나가 캠핑을 즐기곤 하던 일들이 엊그제의 모습들이다.
근자에 부쩍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런 저런 노래경연을 하는 방송들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정치인들도 작은 일 하나를 가지고도 SNS로 유권자들과 소통하려고 애쓰고, 혹자는 팟 캐스트로 이목을 끈다고 자기 방송을 만들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외로 무시로 나가고, 남의 동네를 나돌아 다니는 일들이 이번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연히 다른 건강한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는 일로 여겨지게 되어 가고 있다.
또 익명의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는 스스로를 악마라고 지칭하는 한 젊은이의 너무도 일상이 엽기적이고, 도덕적으로 단말마적인 성적 해악이 온 국민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도대체 사람의 삶은 어디까지 더 수월해야하고, 무슨 일까지도 더 편리해야 하는가. 이러다가 막 자라는 어린이들이 어른과의 부대끼는 삶을 살아내기나 할까. 편리하고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인공지능하고 같이 지내면서 나아준 부모나 길러준 가족을 기억하려고 할까.


코로나바이러스로 엉망진창이 된 세계경제를 살린다고 무제한으로 돈을 풀고 재정의 금고를 사정없이 연다. 그런다고 이 엄청난 피해나 충격이 제대로 아무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해도 일정한 자기모순과 사회적 해악요소를 가진 금융통화제도를 모래성 무너지듯이 한순간에 허물어도 되는 건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미국은 2008년에 닥친 금융위기를 막느라고 2014년까지 5천조 원이 넘는 양적완화를 하고 제로금리로 시장을 살려오다가 2015년에 조금 정신을 차렸다고 4년 동안 9번을 금리를 올리더니만 이번에 단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그렇게 어렵사리 정상화한 금리를 몽땅 바닥으로 내려버렸다, 그리고 역시 양적완화는 돌아온 제비처럼 금융시장의 하늘을 날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전대미문의 인류 대 참사로 인해 세상을 덮친 경제적 파행의 그림자를 조속히 잘 걷어내야 하지만, 국가와 사회와 시장을 관리하는 모든 제도관리를 무너트리고 제방을 무제한으로 터트리면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고 어디를 향해 다시 먼 길을 가야 할까.


갈수록 사람이나 사회나 국가는 점점 그 어떤 희생도 하지 않으려한다. 그러나 충격적인 문제나 엄청난 사단은 항상 찾아온다. 그러면 무엇으로든 신속히 불을 꺼야 하고, 아무 일 없던 듯이 원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모두가 그걸 원한다. 그러면 그 일로 인한 역사의 교훈이나 시대적 깨달음은 과연 누구의 몫인가.


아프지 않고 수술 받으려 하고, 고통 없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들이 경제나 사회운영 곳곳에 마약처럼 스며든다. 곧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누구나 대체로 다 잊으려 할 것이다. 지금의 기억을 덮으려 하고 다른 길로 나아가는 속도를 더 내려고 하고 가볍게 털어버리려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것이 풀려버리고 파 해쳐지고 널브러져 있다. 만약에 이걸 다 비 대면이나 가상생활 환경으로 대체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은 코로나19가 그동안 너무나 가벼워진 세계인의 편의와 편리의 대가라는 교훈을 또 잃는다.

 
사람 사이에 교제와 먼 곳과의 교류에서 신중함이 살아나고, 자기 몸과 마음을 정갈히 다루는 일은 가난하고 부족한 이전의 삶에서도 잘 해오던 일이다. 청결하고 절제하고 진정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일은 과학이 없을 때도 잘 해오던 일상이다. 남의 사정을 헤아리고 전체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일은 문명의 수준이 낮을 때도 해오던 일들이다.


즉시 가볍게 아예 없었던 듯이 이번 일이 넘어가지도 않겠지만, 점점 캐주얼 해지는 사람들의 일상이나, 사이버 세상의 경솔함이나, 금융경제의 날랜 가벼움은 이제 좀 더 엄중하고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감동이 있고 여유가 있고 재미있는 삶은 원래부터 인간이 누리던 행운은 아니었다, 정치나 사회제도가 개인의 길고도 위태로운 생명을 지켜주는 일도 그 사례가 전무하다. 항상 위험을 생각해야하고 항상 고단한 수고가 따르고 항상 피해가 불가피한 인생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도 불행은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


누가 부자이던지 지식이 많던지 재주가 뛰어나도 그의 삶은 항상 위태롭고 불확정적이다. 그런데도 안심을 바라고 안정을 바라고 안전을 원한다. 그런 기대는 정말 기대일 뿐이다.
자산이 많더라도 부동산이 안전한지, 달러가 안전한지, 우량주가 안전한지는 온 천지에 사단이 나면 우리 삶의 현장에서는 아무런 담보가 없다. 그러니 대박이나 일확천금도 천부당만부당한 헛 소망이다. 나는 이제 좀 살만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불행은 어딘가에서 대기 중이다, 불행이 닥치면 희생은 불가피하다. 아픈 고생도 감내해야 한다. 다시 일어서는 데는 더 시간과 힘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즐겁고 가벼운 삶을 원한 사람은 희생의 아픔보다도 지루하게 늘어지는 엄숙한 시간의 고비를 넘기는 게 더 어렵다.

 
우리 다시 이 고통으로부터 온 나라가 원기를 좀 찾으면 예전처럼 조금은 엄숙히 살자. 서로 서로 안부를 묻고, 양보하고 나누고, 돕고 기다리고, 참고 안으로 삭히고, 진지하고 내면이 깊은 그런 삶으로 서서히 다시 돌아가자.
깊은 바다와 맞닿은 해안은 파도가 진중하다. 이 와중에 안전자산을 찾고 고수익을 기다리고 챤스를 쓰려고 들면 그건 연목구어(thinking the impossible)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차라리 내 삶의 테두리(edge)에서 다시 무게중심(center of mass)으로 돌아가자. 주식시장도 갑자기 급락한 시장환경에서는 내재된 순자산가치보다 주가가 빠르게 내려가 그래프가 무겁게 가라앉은 기업들이 있다.

엄길청(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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