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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31일 발표한 ‘2025년(누적)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 조치’ 미이행으로 인한 ‘재해조사 사망사고자’가 605명으로 전년 589명보다 16명(2.7%) 늘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573건으로 전년 553건에서 20건(3.6%) 증가했다. 2022년 이후 이어지던 감소 흐름이 3년 만에 증가로 돌아섰다. 구호는 요란했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 수치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성적표는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특히 5인(건설업은 연간 공사 금액 5억 원) 미만 사업장 사망자는 전년보다 22명(14.5%) 늘어난 174명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사망자가 총 158명으로 17명 줄었으나, 건설업과 기타 업종에서는 각각 총 286명으로 10명, 총 161명으로 23명이 더 숨졌다. 기타 업종 중에서도 규모가 작고 안전 관리가 열악한 도소매업과 임·어업에서 사망자가 각각 총 25명으로 9명, 총 18명으로 11명이나 늘었다.
전체 사망자의 3분의 1 가까이가 5인 미만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어 충격이 크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익히 알려진 ‘산업재해 취약 지대’란 게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설비·안전 장비가 열악하고, 원청이 요구하는 납기 일에 맞춰 작업해야 한다는 압박이 극심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은 더 위험하지만, 안전관리자를 따로 둘 여력이 없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사업장을 전담 관리하고, ‘노동안전 지킴이’ 제도를 통해 안전 지도를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영세 업체 산재 문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 다시금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사고 유형도 후진적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떨어짐’ 사고가 249명으로 전체의 41.2%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고, 전년 대비 9.7% 늘었다. ‘물체에 맞음’ 72명(11.9%), ‘부딪힘’ 62명(10.2%)이 뒤를 이었다. 특히 ‘무너짐’ 사고는 38명으로 전년보다 18명, 90%나 급증했다. 기본적인 안전시설과 관리만 갖춰도 예방이 가능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 압박이 큰 현장일수록 안전이 후(後) 순위로 밀린다. 도·소매업과 임업·어업 등에서도 각각 9명, 11명 증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고위험 업종 소규모 사업장 2만 3,000곳 순회 점검, ‘안전한 일터 지킴이’ 1,000명 투입, 신고 포상제 도입 등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단속과 계도 중심의 대책이다. ‘전쟁’과 같은 살벌한 구호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안전 비용을 공사비에 의무 반영하게 해야 한다. 또한 영세 사업장의 상시적인 안전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만 한다. 근로자가 지게차에 치이거나 나무에 깔려 사망하거나 양식장 수조에서 익사하는 참담한 사고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소규모 사업장 사망사고 증가세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5인(건설업은 5억 원) 미만의 증가 폭(22명 / 14.55%)이 50인(건설업은 50억 원) 이상의 증가 폭(4명 / 1.6%)을 크게 웃돌고 있다. 사고사망자가 가장 많은 업종인 건설업도 사망자가 전년보다 10명 늘었는데 5억 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 사망자가 25명 증가한 것이 전체 증가 폭에 영향을 줬다. 소규모 사업장은 ‘채찍’의 효과가 크지 않은 만큼 노사가 자율적으로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는 위험성 평가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접근이 급선무(急先務)다. 따라서 중대재해 발생 때 사업주를 형사처벌 할 수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서둘러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처벌이 곧 예방’이라는 단선적인 논리에 갇힌 착각이자 오류라며 반대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기업들은 사고 예방보다는 경영진의 처벌 회피를 위한 서류 작업과 법적 방어막 구축에 자원을 쏟고 있다며 지난해로 법 적용 4년 차를 맞은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가 도리어 증가한 사실은 처벌 중심 접근법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특히 안전 관리 여력이 부족한 영세 사업주들에게 이 법은 재해 예방의 지침이라기보다는 ‘폐업의 공포’를 부추길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작은 사업장 안전 관리 비용’을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관리와 지원에 나서야만 한다. 결국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등 안전·보건 관련 법령 적용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가 건축 인가·허가 단계부터 안전 대책에 개입한다면 영세 건설업 산재 사고를 줄일 수 있다. 또 작은 사업장 대부분이 원청에 종속된 하청이기 때문에, 원청이 하청의 안전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강제할 필요도 있다. 작은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해서 그 생명의 가치까지 작아지는 것은 결단코 아니란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안전 경영이 불가능한 작은 사업장의 구조적 한계를 더 이상 방치(放置)하거나 방기(放棄)하지 말고, 정부·지자체·원청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맞춤형 핀셋 대책을 서둘러 강구(講究)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통계를 산업재해 발생일 대신 보상일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유족급여가 승인된 사고 사망자는 872명으로 전년보다 45명 늘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730명(83.7%)으로 가장 많았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못한 ‘노무 제공자’가 137명(15.7%)으로 뒤를 이었다. 노동자는 전년보다 5명 증가했는데 반면, ‘노무 제공자’는 무려 36명이나 증가했다.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상시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한다.’라는 전속성 기준이 2023년 폐지되면서 ‘노무 제공자’ 중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그간 보이지 않았던 죽음이 통계에 잡히고 있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현실은 ‘노무 제공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조항만 적용되는 등 아직도 사각지대(死角地帶)에 방치되고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보호 대상,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를 확대하겠다고 밝혀온 만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방안을 서둘러 관철(觀徹)시켜야만 한다. 아울러 숨진 ‘노무 제공자’ 중 화물노동자, 배달 라이더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勘案)해서라도 배달 라이더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화물노동자는 올해 초 ‘안전운임제’가 재도입되면서 사실상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있는데 반면, 최저임금제가 적용되지 않는 배달 라이더들은 속도전에 내몰려 산재(産災) 위험이 더더욱 커지고 사고 발생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올해는 반드시 산업재해 사망을 줄이겠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다짐이지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지난 3월 20일에는 대전에서 자동차부품 공장 화재로 근로자 14명이 사망하는 등 74명의 사상자를 낸 초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정부가 ‘초고위험 사업장’으로 분류해 놓고도 정밀한 현장 점검이나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경영자의 잘못이 분명하지만, 위험을 방치한 당국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전국에 이런 사업장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뒤에 책임을 묻고 벌을 주는 조치는 참으로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게 예방하고 막아내는 조치야말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산재(産災)와의 전쟁은 요란한 기업 벌주기도 필요하겠지만 차분하고 정교한 방어전(戰)이 더욱 중요함을 각별 유념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가일 층 정려(精勵)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민생(民生)’이란 일반 국민의 생활이나 생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먹고사는 문제의 총합(總合)이라 할 수 있다. 물가·임금·주거·의료·교육·복지·안보 등 국민의 일상적인 생활과 생계를 평안하게 하는 ‘안전’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경영의 최고 가치이자 최대 덕목이며 최종 목표라 아니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생활할 수 있는 필수 여건이다. 결국 인간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동안 어느 한순간도 가슴밖에 둘 수 없는 지고지순한 최고의 이상이자 이념이다. 국민 대다수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 일을 한다. 자신의 일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다면 그 건 한 사람의 노동력 상실에 그치지 않고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파멸되며 사회가 무너진다. 옆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이어지고 그 회사는 물론 그 회사가 속한 지역사회로 파급되고 결국 붕괴의 나락으로 내몰린다. 이런 걸 가리켜 우리는 민생 파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은 엄격해야 하고, 사람 목숨을 귀히 여기는 사회적 환경이 민생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돼야만 한다.
일찍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고 독일의 사회학자 ‘율리히 백(Ulrich Beck)’은 “현대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위험은 단순한 재앙이 아닌 예견된 잠재적 위험으로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 산업화 등에 주로 기인한다.”라고 경고했다. 작금의 산업재해는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외주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영덕 풍력발전기 화재 사고처럼 위험은 외주화된 지 오랜 구각(舊殼)과 관행(慣行)으로 뿌리내리며 이미 고착(固着)됐다. 산재(産災)는 한강의 기적(奇蹟)으로 포장된 압축(壓縮)·돌격(突擊) 경제성장이 만들어 놓은 후과(後果)이자 양적 팽창이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부채(負債)로 우리 식도에 걸린 커다란 가시가 아닐 수 없다. 가시가 박힌 식도를 통해서는 어떤 음식도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당연히 고통이 수반됨은 물론이다. 이러한 고통은 때로는 수치로 변환돼 우리를 둔감하게 만든다.
산재(産災) 사망자 숫자가 매년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참사는 사회적 재난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40명 사망, 10명 부상),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 40명 부상),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45명 사망, 147명 부상), 2020년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38명 사망, 10명 부상), 2024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23명 사망, 8명 부상) 등 대형 화재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축자재로 값싸고 불에 취약한 유기 단열재인 우레탄 또는 스티로폼이 들어간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했다. 불에 강한 내화구조로 바꾸지 않아서 노동은 질식사하는데 자본은 비용 타령만 해댄다면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결단코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율 부동의 1위를 바꾸긴 요원(遼遠)할 뿐이다.
희생자 숫자에는 정신도 없고 영혼도 없다. 지난 3월 20일 대전 자동차 부품공장 화재 참사로 사망 14명을 포함해 74명의 사상자를 냈다. 안전공업이라는 회사 명칭이 무색하다. 사망자의 신원확인에만 여러 날이 걸렸다. 화재로 인한 시신 훼손이 심해서다. 여기에 하청노동자와 파견 인력이 들어왔던 공장이라 어떤 노동자가 일하는지 파악하기조차도 어려웠다. 그들은 고귀한 이름을 대신해 수치화된 비용계산서로 집계될 뿐이었다. 이처럼 안타깝고 야박한 대우를 받는 수많은 이름도 없는 무명씨들이 죽어 나갔다.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화재 참사의 판박이다. 참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괴롭지만, 사회적 약자에 피해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가장 ‘불평등한 재난’으로 꼽힌다. ‘존 C. 머터(JOHN C. MUTTER)’ 컬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다. 결코 허투루 넘길 일이 결단코 아니다.
굳이 되뇌고 일컫고 싶지 않지만,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로 고착(固着)하는 후진국형 인재(人災) 빈발(頻發)에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慨歎)스러울 뿐만 아니라 잊을만하면 터지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대형 참사의 악순환 고리가 끊이질 않고 있어 ‘참사 공화국’이란 오명에 고개를 떨굴 뿐이다. 산업현장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를 촘촘하고 세심히 점검해 대비하는 풍토가 조기 정착되지 않는다면 또 언제 어떤 예기치 못한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나 망우보뢰(亡牛補牢)의 치둔(癡鈍)의 우(愚)는 결코 다신 있어선 안 된다. 소중한 생명을 잃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반드시 끊어야만 한다.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는 “가장 큰 죄는 무관심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구조적 미비점을 알면서도 방관(傍觀)하고 방치(放置)하며 방기(放棄)하는 행태야말로 사회가 짊어져야 할 가장 엄중한 책임을 방임(放任)하는 해악(害惡)이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란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선각(先覺)을 떠 올리고, 곡돌사신(曲突徙薪)의 심정으로 거안사위(居安思危)와 초윤장산(礎潤張傘)의 지혜 그리고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상두주무(桑土綢繆)의 혜안(慧眼)과 안목(眼目)으로 우리 사회에 해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중대재해(重大災害)’만은 반드시 막아내 안전 선진국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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