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수천명 모여 아침까지 다양한 주제로 토론
스페인 '인디그나도스'에 비유하기도…프랑스 정부 "타협 준비 중"
(서울=포커스뉴스) 프랑스 정부의 노동법 개정에 저항하며 시작된 시민주도의 대규모 야간 집회 '밤샘 시위(Nuit debout)'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며 프랑스 전역을 넘어 다른 나라까지 퍼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68혁명부터 시작된 프랑스 젊은이들 주도의 오랜 시위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밤샘 시위는 툴루즈, 리옹, 낭트 등 프랑스 전역은 물론 심지어 국경을 넘어 브뤼셀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일주일 넘게 매일 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서로 마이크를 넘기며 구글의 지배부터 탈세 혹은 주거 불평등까지 모든 것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토론과 혁명가 제창은 간이 텐트에 매점을 만들어 수프와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른 아침까지 계속된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에 의해 끌려나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다시 다음날 시위 캠프로 돌아온다.
◆노동법 개정안으로 점화…스스로 추진력 얻어 뻗어가는 '밤샘 시위'
밤샘 시위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내놓은 사회당의 노동법 개정안을 비판하며 지난달 31일 밤 파리에서 시작됐다.
올랑드 정부가 10% 이상의 높은 실업문제를 해소하고자 발의한 노동법 개정안은 직원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근무시간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젊은이들은 이 법이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할 것을 우려해 정부에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시발점은 지난달 31일이었지만 사실 이 시위는 좌익 활동가들에 의해 파리 회의에서 몇 개월 전부터 계획되어 왔다. 첫 발상은 흥행 다큐멘터리 영화인 좌파 시사 풍자극 '고맙소 후원자!(Merci Patron!)' 관련 활동가 사이에서 나왔다.
주목할 점은 이 운동이 스스로 추진력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항의의 대상은 지난해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응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보안법 등을 포함한 다른 사안들로 점차 확대돼갔다.
배달 기사였던 미셸(60)은 "2월 공개회의에 300~400명이 모였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정부를 위협할 수 있을지 의논했다. 그때 떠올린 것이 큰 거리 시위를 벌이고, 단순히 집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며 "3월31일 노동법 시위가 분기점이었다. 엄청난 비가 왔지만 사람들은 모두 광장으로 돌아왔고, 오후 9시 비가 그칠 무렵까지 그들은 그대로 있었다. 사람들은 다음날에도 돌아왔으며, 이런 일이 매일 밤 계속됐다. 이 행동은 정부를 놀라게 할 수 밖에 없다. 설명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의적으로 모든 사람이 한곳에 모여 매일 밤 주거문제부터 최저임금, 난민까지 어떤 주제든 토론하며 생각을 나누는 이 시위는 프랑스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발언하라고 시키지 않았고, 어떤 단체도 압력을 넣지 않았다. 사람들은 스스로 여기에 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위 참여자 마티유(35)는 "노동법이 마지막 장작"이었다며 "하지만 사실 문제는 그보다 훨씬 크다.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이 정부는 실업, 기후 변화, 재난에 대한 사회 대책 등 진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실패하고, 동의하지 않은 뗏목만을 띄우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분노했다, 스페인 '인디그나도스'에 비유되기도
가디언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한 군중 대부분은 올랑드의 사회당이 집권하고 4년 후 배신감을 느꼈으며, 그 분노가 벅차올라 끓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밤샘 시위는 빈부 격차, 부의 집중, 청년실업의 증가 등에 분노해 2011년 젊은이들이 많은 사람을 동원해 곳곳을 점거한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Indignados)'에 비유되고 있다.
시위대 보도 대변인 역할을 하는 조슬린(26)은 "이 움직임과 인디그나도스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아프고 지쳤으며 그 무력감은 몇 년간 지속돼 왔다. 올랑드는 좌파 정책을 약속했지만, 이제 다 포기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국가비상사태, 새 보안법 그리고 사법제도와 보안 단속의 변화다"라고 말했다.
◆지도자 없는 '투쟁의 융합'…"증오, 무기, 폭력은 없다"
매일 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오후 6시에 총회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시위대는 손가락을 머리 위로 흔들거나 손목을 교차하는 등 암호화된 손짓을 이용해 소통한다.
새로운 사회와 노동 구조부터 어떻게 광장을 점령할 것인지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도 생겨나고 있다. 화이트보드에는 경제에 대한 주제부터 시위대를 위한 미디어 교육까지 그 밤의 토론과 활동 목록이 있다. 행동위원회의 신조는 "증오, 무기, 폭력은 없다"다.
시위에 참여한 누구나 2분간 발언할 수 있다. 원예(gardening)위원회의 구성원은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완벽한 작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을 문서화하고 슬로건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시(poetry) 위원회 소속 시인은 "모든 운동은 그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위자들은 정기적으로 파나마 페이퍼스와 관련된 은행 피켓 시위나 파리 북부의 이민자 추방 반대 시위 등 다른 항의 운동을 돕기도 한다.
이 운동의 전제가 되는 개념은 지도자 없는 '투쟁의 융합'이다. 프랑스 시위에서는 드물게도 밤샘시위 광장엔 시위를 장식하는 특정 조합의 현수막이나 깃발 등이 없다.
법학도 셰실(22)은 7일 밤 총회에서 "나는 오늘날 사회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게 정치는 망가진 느낌이 들지만, 이 움직임은 시민 행동의 측면에서 흥미롭다. 나는 수업을 마친 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이 움직임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 당황…"타협 준비 중"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님부터 학생, 노동자, 예술가, 죄수까지 참여하는 이 대규모 야간 항의 시위가 점차 확대되고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프랑스 정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파리 당국은 이 시위의 치안 관리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지난달 파리 고등학교에서 열린 노동개혁 반대 시위에서 경찰이 학생을 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주말 또 다른 집회에 학생과 젊은이가 참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타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9일 새벽(현지시간) '밤샘 시위(Nuit debout)'가 열리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노동법 개정에 저항하며 시작된 시민주도의 이 광대한 야간 집회는 일주일 이상 지속되며 프랑스 전역을 넘어 브뤼셀까지 확산됐다. <사진출처=트위터캡처>9일(현지시간) 새벽 '밤샘시위' 총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트위터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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