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현지시간) 네팔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의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백 명의 인명 피해를 내는 홍수는 통상 집중호우를 동반하지만, 이번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주변을 초토화할 정도로 강력한 홍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인 분석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전문가와 주요 외신, 현지 매체들은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 산맥 고지대의 빙하가 녹아 붕괴하면서 대홍수가 발생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산악 지역의 바위와 토사를 단단히 잡아 주는 ‘천연 접착제’ 빙하가 녹으면서 얼음덩어리와 암석 등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고, 낙하물이 인근 빙하호(湖) 등에 떨어져 물이 순간적으로 흘러넘치며 일대를 휩쓸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빙하 붕괴가 대홍수 불렀나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는 “네팔 참사로 히말라야의 빙하호폭발홍수(GLOF)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AFP도 “사고 지역의 험준한 지형이 재해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기후 변화로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위험에는 GLOF가 포함된다”고 했다.
히말라야나 알프스·북미의 산악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GLOF는 빙하가 녹아서 생긴 빙하호의 물이 터지듯 범람하는 현상이다. 빙하호의 물을 댐처럼 막고 있는 퇴적물(빙퇴석)이 붕괴하면서 발생한다. 온난화 등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바윗덩어리, 토사와 함께 호수에 떨어지면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해 빙퇴석 제방을 무너뜨릴 수 있다.

빙하 붕괴 외에 지진 등으로도 GLOF가 발생한다. 실제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사고 지역에서 규모 4.4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가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이후 위성 사진 등을 토대로 대규모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규모 5.2 지진 수준의 에너지가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붕괴된 빙하와 토석류가 휩쓸려 내려가면서 홍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홍수가 발생하면 수백만t의 토사와 물이 순식간에 하류로 밀려 내려와 대피가 어렵다. 쓰나미가 산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사고 지역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낙차가 크고 계곡이 좁아 위험이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캐나다 캘거리대 지질학자 대니얼 슈거는 위성 사진 등을 근거로 히말라야 산맥 해발 5200m 높이에 있던 폭 610m의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1200m 아래 계곡으로 낙하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에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GLOF는 강수량을 기반으로 하는 홍수 경보 시스템으로 위험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기 어렵다. 미국 텍사스대 수문학자 하팀 샤리프는 “사실상 세계 모든 홍수 경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고 지적했다.
미국지구물리학회(AGU) 발행 매체 이오스(Eos)는 이번 참사의 시작점으로 암빙 사태(rock-ice avalanche)를 지목했다. 고산지대의 암반과 그 위에 붙어 있던 얼음·빙하가 한꺼번에 떨어져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현상이다. 위성 사진 판독 결과 티베트 쪽 산악 지대에서 대규모 붕괴 흔적이 포착됐다. 이오스는 붕괴 과정에서 얼음 일부가 녹아 생긴 물과 토석류가 이동하며 흡수한 퇴적층의 물, 하천수가 합쳐져 대홍수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무너진 얼음과 토사가 강을 일시적으로 막아 물이 고였다가 한꺼번에 터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지 매체 카트만두포스트에 따르면 네팔 수문기상국은 네팔·중국 국경에서 약 20㎞ 상류 지점의 강이 얼음과 토사에 막혀 형성된 호수가 붕괴했을 수 있다고 봤다. 카트만두에 본부를 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는 “국경 지역 강 상류에 여전히 막힌 부분이 있어 추가로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근본적 원인은 지구온난화”
이번 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전 세계적 기후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온난화가 심해지면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 빙하호가 많이 생기고 수량도 많아진다. GLOF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실제 이번에 홍수 피해를 본 티베트 국경 부근 중국 지룽현 일대에선 작년 7월에도 빙하 붕괴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중국이 지난해 위성 영상을 분석한 결과 사고 지점 상류에는 빙하호 55개가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비슷한 대홍수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고지대 빙하의 안정성이 낮아져 붕괴·추락 위험성도 커진다. ICIMOD에 따르면 2000년대에 들어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는 두 배 이상 빨리 녹고 있다. 이 지역 빙하 두께가 2000년 이전에는 연평균 34㎝씩 줄었으나 그 이후엔 73㎝씩 줄고 있다는 것이다. 1990~2020년 사이 이 지역 빙하 면적의 12%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빙하호 폭발 홍수(GLOF)
산속 빙하가 녹아 생긴 물이 호수처럼 고여 있다가, 물을 막고 있던 흙·돌·얼음으로 된 자연 제방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거대한 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산 아래로 쏟아지는 현상.
수경(水鏡)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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